◆登山과 人生
자기 몫의 산행은 자기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대신 가 줄 수도 없고 업어다 주지도 않는다. 힘들어도 가야만 한다. 인생 길도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생의 프로에게는 지혜가 많다. 그러나 제법 큰 산을 오르기위해서는 거기에 걸 맞는 장비들이 필요하다. 간단한 일상사에야 달리 지혜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나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는 지혜로 무장해야 하는 것과 마찬 가지다. 오를 때는 힘만 뒷받침 되면 충분하지만 내리막에서는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산이든 인생 길이든 정상에 서있는 사람들이 음미해볼 경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아니면 숫자를 세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혹은 백 걸음마다 짧게 쉬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목표를 작게 세우면 그만큼 달성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아마도 힘들다는 생각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산에 오르면서 노동요가 생겨난 유래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산에서 맛 볼 수 있는 즐거움이 다 달아나게 마련이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 일이 중요한 까닭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뱁새에게 황새 걸음을 걷지 말라는 교훈은 그래서 만들어 졌으리라. 우리에게 생각할 과제를 던져 준다. 그들은 젊은 시절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정면승부를 거는 대신에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익사가 무서워 물가에 가지 않았다던가, 부상이 두려워 스케이트를 배우지 않았다는 식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왕도는 없다. 타고난 성품, 투입한 노력, 길러진 실력만이 성공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후광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본인의 마음은 떳떳할까? 마치 헬기를 타고 정상에 내린 등산객처럼 멋적지 않겠는가. 경사는 급해지며, 마실 물은 줄어들고, 산소는 부족해 진다. 모든 어려움이 함께 머무는 곳 그곳이 바로 정상이다. 좌절과 고통에 대해 고백한 얘기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므로 행여 우리가 정말 어렵고 힘든 지경을 만나면 그것이 인생의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받아 들일 필요가 있다.
가는 곳에 대한 정보, 산행에 필요한 물자, 산행의 조력자, 함께할 동반자를 미리 준비한다.
지혜 없는 자는 무모하게 산을 오른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오른다. 산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무모한 출발 때문이다. 한 평생을사는 인생 길에 계획과 준비가 필요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으리라. 중도에 포기하여 탈락하는 사람도 있고, 가기로 약속했다가 애초에 불참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혹은 도원의 결의와 같은 우정을 약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끝까지 지켜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린 나머지 지키지 못할 약속을 쉽게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결과가 항상 계산한 대로 나오던가? 많은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작은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그 나름 대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나 능력 없는 사람에게나,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인생길이 비슷하게 어렵듯이. 인생 길의 불행을 꽤 많이 덜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이야기 할수록 불행은 점점 커진다.”
그러다가 산을 내려오는 것은 거의가 비슷한 시각의일이다. 앞서가던 사람이 뒷사람에게 추월당하는 일도 생기고 뒤처진 사람이 다시 앞으로 나가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나 이들이 직장을 떠나는 것은 거의가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보면 생전의 앞섬과 뒷섬의 선후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나중이 어려운 길은 이미 초반을 쉽게 보냈다는 증거가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이나 노고단을 출발점으로 하여 천왕봉으로 가는 사람에게나 지리산 종주는 똑 같은 어려움을 준다. 다만 어느 한쪽이 초반에는 쉬웠을 뿐이다. 산길에서 새삼 빛을 발하는 법칙이다. 이때 상대적으로 시간은 더 걸리게 마련이다. 힘을 덜 들게 하기 위해서는 걸음을 더 많이 옮겨야 하고 시간은 더 걸리게 된다. 세상살이에서도 어려운 길을 피하다 보면 결국 정상에 오르기까지 더 많은 걸음을 걸어야만 한다. 도무지 아득하기만 하다. 정말 내가 그 길을 왔단 말인가? 어느 날 문득 돌아본 인생길은 얼마나 아득한 것이던가. 가장 힘든 순간을 데드 포인트(dead point)라 이름 할 수 있는데, 이 데드 포인트를 이기고 나면 사람들은 그 고통의 순간을 기억 저편으로 묻어둔 채 발길을 재촉한다. 혹은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아들의 인내심이 걱정되는 부모라면 틈 날 때 마다 사랑하는 아들을 산으로 보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엄청난 출산의 고통을 이겨 냈기에 사랑하는 아들을 얻을 수 있었노라는 가르침도 함께 묶어서.
그들은 속도를 낼 곳과 천천히 가야 할 곳을 구분하며, 힘을 쓸 지점과 힘을 아낄 지점을 분별하므로 힘을 안배할 수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여서 아마도 인생의 길을 아는 사람을 가리켜 선지식(善知識)이라고 불렀으리라. 그러나 그 걱정을 앞 당겨서 치르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앉아서 걱정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뚜벅뚜벅 산길을 오르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묘안이 있겠는가? 어려운 코스에는 한꺼번에 여러 학점이 주어 지기도 한다. 인생을 몇 년이나 살면 삶의 길눈이 트일까? 산길에 밝다고 해서 인생길까지 훤한 것은 아니다 동양의 정서로는 구도와 수양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적어도 동양인들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산을 어떻게 정복한단 말인가. 산은 자연일 뿐인데.
허리를 굽히지 않고는 산에 오를 재간이 없다. 대체로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은 이렇듯 산 입구에서부터 몸을 자주 굽혔던 사람들이다. 이런 굴신력이 아니고는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한다. 높으면 높을수록 굽힘도 커져야만 하니까.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여유 있는 하산 길 이전에 이미 힘든 등산길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훈련장으로 산행 이상 좋은 도장이 없다. 안녕하세요. 좋은 산행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너무 지쳐서 여유가 없어졌거나. 산에서 느끼는 생명에의 외경심이라면, 실생활에서 적용한다면 세상의 모습이 얼마나 좋을까. 하산하면 그 모습이 흐트러짐은 어떤 조화일까. 교회당이나 성당이나 법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성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세상에 나가면 다른 얼굴이 되는 것처럼. 그러나 한 재 두 재 넘으면서 짐은 조금씩 줄어든다. 하산하여 산의 발 뿌리를 벗어날 무렵이면 대부분의 배낭은 텅텅 비게 된다. 무등은 평등과는 다르다. 평등이나 동등은 등위가 존재함을 전제로 모두가 똑 같은 등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무등은 처음부터 등위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산에 가면 등위가 없고 산만 있을 뿐이다. 험난한 절벽도, 높은 봉우리도, 깊은 계곡, 사나운 맹수도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허기와 한기다. 허기와 한기만 이길 수 있다면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모두 가볼만 하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때 그 고통은 예삿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걸어다니는 물통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산길에서 물이 부족한 고통은 공포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좋은 산은 마실 수 있는 좋은 물이 넉넉 한 산을 이름 한다.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보와 몰락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모든 문명의 영고성쇠를 응전과 도전의 관계로 풀이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래서 산길에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서툰 안내인 때문에 산길에서 방황한 적이 있는가? 잘못된 정보는 산행을 훨씬 힘들게 만들고 심한 경우 산행을 아예 망치게도 한다. 우리가 가진 인생길의 지도나 이정표에는 이상이 없는가?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되는 안내자를 가지고 있는가? 리허설도 없이 곧 바로 실행에 옮기면서 살아간다. 아내노릇, 남편노릇, 군대생활, 직장생활 등 모두 리허설이 없다. 한번만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잘 할 것만 같은데 리허설이 없는 인생이기에 두 번째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두 번째일지라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느끼는 어려움과 치러야 할 수고는 매번 비슷한 무게로 다가 온다. |
모셔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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